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2025년 12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 전문가 중심의 분과위원회와 TF를 기반으로 총 98개의 과제를 담은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획은 AI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2030년까지 피지컬 AI 세계 1위 달성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인공지능을 국가적 핵심 기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제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비교적 짧은 정책 주기 안에 다수의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는 정책 의지와는 별개로 집행 단계에서 상당한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계획에 포함된 교육 개혁, AI 기반 시스템 및 도시 구축,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 과제들은 본질적으로 중·장기적 접근이 요구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단기 성과를 중심으로 한 일정 속에서 설계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로 인해 개별 과제의 완성도가 저하되고, 중장기적 기술 축적보다는 단기 실적 위주의 사업 운영으로 흐를 위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대통령 소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설치하고, 해당 위원회의 존속 기간을 5년으로 규정하며, 위원장을 포함한 주요 구성원을 대통령이 임명·위촉하도록 한 제도적 설계와도 맞물려 있다. 이로 인해 국가 AI 정책의 기획과 조정 체계가 현행 정부의 정책 주기와 강하게 연동될 가능성이 내재한다.
이러한 한계는 중국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은 2017년 7월 국무원을 통해 「신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AI를 개별 부처의 정책 과제가 아닌 국가 발전 단계와 직결된 핵심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였다. 중국 국무원은 최고 행정기관으로서 국가 전략을 직접 하달하는 위치에 있으며, 해당 계획은 2020년, 2025년, 2030년을 기준으로 국가 AI 역량의 발전 단계를 구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0년에는 기초 연구와 데이터·인프라를 중심으로 AI 핵심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단계를 설정하였고, 2025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AI 활용을 확산시키며 일부 핵심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030년은 이러한 축적과 확산의 결과를 토대로 글로벌 AI 기술과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로 도약하는 단계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0년, 2025년, 2030년이라는 시점은 단순한 연도별 목표라기보다는, 국가 AI 역량이 단계적으로 고도화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준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2019년 12월에 이르러서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으로 AI 국가전략을 제시했으며, 중국과 달리 국가 발전 단계에 따른 정책의 누적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2030년까지의 비전과 목표를 중심으로 전략을 구성하였다. 이후 AI 인재 양성, 데이터 구축, 공공 부문 AI 도입 등 일부 핵심 과제는 실제로 추진되었으나, 이러한 정책들은 국가 AI 역량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기 위한 명확한 이행 경로 속에서 축적되기보다는 개별 정책 과제 단위로 분절되어 실행되었다. 그 결과 정책 간 연계성과 단계적 확장 구조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면서, 전략의 단계적 연계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전략을 ‘단계’가 아닌 ‘과제’ 중심으로 설계한 차이는 단순한 문서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정책 집행과 성과 형성 과정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중국은 2020년 목표로 제시했던 AI 핵심 기술의 선진국 수준 도달을 일부 분야에서 달성했으며, AI 논문 수 세계 상위권 유지와 얼굴 인식·음성 인식 기술의 대규모 상용화를 통해 기술 축적과 활용 측면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였다. 2025년의 ‘세계 선도’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AI를 둘러싼 기술·산업·정책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만큼의 도약을 이룬 것은 여러 지표에서 관찰된다. 이러한 비교는 AI 정책의 성과가 개별 과제의 수나 선언적 목표보다는, 국가 역량을 어떻게 단계적으로 축적·관리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은 다수의 세부 과제를 포괄하는 실행 계획이라는 점에서 진전된 시도로 평가할 수 있으나, 여전히 단기 정책 주기 안에서 설계된 과제형 접근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독자적인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30년까지 과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설정을 넘어 국가 발전 단계에 기반한 AI 전략 체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 수립의 내용뿐 아니라, 이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정책 거버넌스 구조의 재설계가 필수적이다. 단계형 AI 전략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총괄하는 기구가 대통령 임기와 같은 정치적 주기에 과도하게 종속되지 않고, 중·장기 관점에서 전략의 연속성과 정책 축적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민간 산업계·학계·연구기관의 참여 역시 형식적 자문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환경 변화와 일정 부분 분리된 상태에서 전략의 방향과 이행 경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립적 거버넌스 구조로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립적 거버넌스가 확보될 때에만, 한국은 단기 과제의 나열을 넘어 기초 인프라 구축, 산업 확산, 기술 주도권 확보로 이어지는 단계형 AI 전략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장기간에 걸친 정책 축적과 기술 경쟁력 형성이 가능한 전략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Minji Choe is an editor at the Asia-Pacific Democracy Incubator.